후나바시 사고 투쟁에서 배운다


Korean index page
Japanes home page
Japanes Home page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을 확립한 후나바시 사고 투쟁에서 배운다
검사수선 업무 전면 외주화 저지를 위해

도로치바는 검사수선 업무 전면 외주화 저지를 위해 2월1~2일 48시간 파업으로 총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이 투쟁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도로치바의 토대를 이룬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을 확립한 후나바시 사고 투쟁의 교훈에서 다시 한번 배우고자 한다.

1972년 3월28일 소부(總武)선 후나바시(船橋)역 상행 승강장에 정차해 있던 전동차에 후속 전동차다 추돌했다. 수도권의 아침 러시어워에 비록 사망자는 없었지만 758명의 승객이 부상한 큰 사고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마가사키 대참사 같은 충격이었다.
추돌한 전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던 국철동력차노동조합(동노) 치바지방본부 츠다누마 지부 소속인 다카이시 마사히로(高石正博) 운전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당했고 언론들이 일제히 “운전사의 방심과 실수가 사고 원인”이라고 악선전을 벌였다. 이 중압을 물리치며 분노와 억울함을 투쟁으로 전환했을 때 노동자가 가진 참재력은 엄청난 기세로 풀렸다.
이 사고 원인은 신호 정전과, 2분 반 간격의 과밀 운행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국철당국의 지도 등 합리화에 있었다. 그러한 사실이 점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철당국과 공권력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맡겨 사고 후 반년만에 다카이시 운전사를 부당하게도 기소했다. 이에 대해 동노 치바지본의 현장 조합원들은 “사고는 승무원의 책임이 아니다.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를 구호로 해서 맹렬하게 투쟁에 나섰다. 후나바시 경찰서에 몰려들어 5일만에 다카이시 운전사 석방을 쟁취한 동시에 수차례 준법투쟁과 파업을 전개했다. 또 다카이시 운전사가 기소당한 후 재판에는 조합이 지시한 동원수보다 2배나 되는 조합원이 달려왔다.


조합원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은 후나바시 사고 투쟁
당국을 몰아붙여 다카이시 운전사를 지켜

4년간의 투쟁 끝에 비록 부당판결을 당했지만 국철당국의 처분 기도를 현장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으로 물리치고 다카이시 운전사는 1977년 현장복귀를 이루었다.
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과밀 운행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승강장의 중간 지점에 제로호 시호기라는 위법적인 신호기가 설치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로치바(*)는 실력투쟁으로 이를 철거하게 했다. 이는 후나바시 사고의 원인은 합리화에 있는 것이고 모든 책임이 국철당국에 있다는 것을 국철당국이 인정한 것을 의미했다. 이후 도로치바는 당국의 약점인 안전문제를 잡아 합리화에 의해 빼앗긴 근로조건을 실력적으로 되찾아 왔다. 도로치바는 후나바시 사고 투쟁을 통해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는 자본의 합리화 공세에 패배를 거듭해 온 일본 노동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을만한 투쟁이었다.
(*) 동노 치바(千葉)지방본부는 1979년 3월 동노로부터 분리 독립해서 국철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로서 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 이전의 동노치바지본 시절에도 관례적으로 DORO-CHIBA라고 자칭했음.

노동자에 대한 책임전가를 절대 허용하지 않고 투쟁해내

후나바시 사고 투쟁은 “노동자에 대한 사고 책임 전가를 허용하지 말자”는 데에 집착해서 전개되었다. 여기에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의 핵심이 있다.
첫째로, “모든 원인과 책임이 합리화를 강행하는 자본에 있다”고 단언하는 데에 ‘합리화 절대 반대’ 입장이 관철돼 있다.
“당시 저는 심하게 닥쳐오는 합리화 공세에 대해 가쿠마루파처럼 ‘합리화 반대’를 말로만 외치면 된다는 자세이면 도저히 맞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합리화 반대투쟁은 구체적으로 만들어야겠다 -- 당시는 항상 그런 고민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고가 일어나자 어떤 면에서 ‘바로 이 거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이 후나바시 사고를 둘러싼 투쟁을 노동조합의 가장 핵심적인 운동으로 삼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자 고 마음먹었습니다.”(나카노 히로시 전 도로치바 위원장 지음 <우리는 철로에 산다>)

전후 노동운동, 국철투쟁 역사 속에서 합리화 공세와 어떻게 투쟁하는가라는 것은 큰 주제였다.
“자본주의에서 합리화는 반드시 착취와 수탈의 강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니 절대 반대를 관철하는 것이 옳다” “자본주의가 지속하는 한 합리화 공세는 계속된다. 진정한 반합리화투쟁은 자본주의 그 자체의 타도와 결합되면서 발전된다.” ?- 이는 1967년 국철 5만명 합리화(=정리해고) 반대 투쟁 방침을 결정한 국노(국철노동조합)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말이다. 그러나 국노는 이 입장에서 현장투쟁을 펼칠 수 없었다. 동노-가쿠마루파 역시 “합리화 절대 반대”라면서 반대투쟁을 적대시했다.
모든 세력들이 반합리화투쟁을 관철 못해 굴복했다. 합리화절대반대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투쟁이니 실천에 있어서 그 입장의 진가를 가장 날카롭게 가리기 때문이다.
사고 문제는 임금노동과 자본 간의 비화해(非和解)적 관계를 극히 첨예하게 보여준다. 사고는 합리화의 모순이 터진 것으로 노동자가 죽음을 당하는지 자본을 무너뜨리는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노동자에게 일제의 책임은 없다”라고 단언하는데에 합리화 절대반대 ? 자본주의 타도의 입장이 관철돼 있다. “사고 문제는 노동조합의 과제가 되기 어럽다” “비록 사고 원인은 합리화이지만 사고를 일으킨 것은 노동자다. 그러한 노동자는 기껏해야 구제(救濟)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체제내 노동조합에서는 반합리화투쟁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로치바는 사고문제를 포착해서 합리화 절대반대 투쟁을 실천적으로 관철했던 것이다.
 
둘째로, 사고-안전 문제가 자본(국철당국)의 최대의 약점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자본은 이윤을 낳지 않는 안전 부문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보안시설과 인력을 감축한다. 합리화의 모순은 무엇보다 안전의 위기로 분출된다. 그러나 아무도 “안전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안전 문제는 바로 자본의 아킬레스건이자 모순의 집중점이다.
전후 노동운동 역사 속에서 “저항 없이 안전 없다, 안전 없이 노동 없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투쟁한 탄관노조 미이케투쟁을 비롯하여 안전 문제가 절실한 산별에서는 현장투쟁이 가장 거세게 벌어져 왔다. 사고로 인해 노동자의 목숨이 빼앗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투쟁을 반합리화투쟁과 결합할 수 없어서 투쟁을 계속할 수 없었다.
도로치바는 합리화반대투쟁과 열차의 안전을 지키는 운전보안 확립 투쟁을 결합시킴으로써 반합리화투쟁과 안전투쟁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법원을 향해 시위행진을 벌이는 도로치바 조합원들(1975년)

청년의 근원적인 분노를 조직하며 조합 권력을 되찾아

세째로,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은 청년노동자를 획득하며 조합 권력을 되찾는 노선이다.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구호는 청년노동자들의 분노를 풀어 궐기를 만들었다. 사고는 당사자인 노동자와 승객의 생명을 빼앗게 된다. 당국과 공권력은 사고를 낸 노동자를 범죄자로서 체포하고 유죄로 만들어 모든 생활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노동자는 이러한 중압 속에서 나날 일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은 사고 책임의 일절을 노동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노동자 지배를 관철하고 있다. 사고를 계기로 현장규율을 강화하며 본보기로 처분해서 위협한다. 또한, 특히 베테랑 노동자에게는 직능의식과 긍지가 강하게 있고 사고는 어디까지나 노동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후나바시 사고 투쟁에서 이러한 현장지배를 타파하고 동노본부와 우파 집행부가 장악했었던 치바지본을 격렬하게 몰아붙여 투쟁을 만들어낸 것은 조합원 모두가 청년부였던 츠다누마 지부(다카이시 운전사의 소속 지부)를 비롯한 현장 청년노동자들이었다. “다카이시 운전사에 대한 사고책임 전가 분쇄” “자기 목숨은 스스로 실력투쟁으로 지킨다.” “사고의 일절의 책임은 국철당국에 있다. 운전사 완전 무죄.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 당국”등을 구호로 하여 반합리화-운전보안 실력투쟁을 동노 운동 역사상 처음 관철한 것이다.
배후에서 관리자들이 감시와 압박을 하는 속에서 소정 속도의 절반 이하로 열차를 몰고 운행시간을 엉망하게 만든 준법투쟁과 파업을 자기해방적으로 앞장서 투쟁해냈다.
기관지 <도로치바> 창간호(1976년 발간)에 실린 츠다누마지부 좌담회에는 이 투쟁을 관철한 압도적인 승리감이 생생하게 표헌돼 있다.
“분명히 국철당국에 책임이 있는 사고에 대해 사회적 비판을 빌미로 해서 다카이시 본인에게 덮어씌운 거라 용납할 수 없지. 이 사실만으로 전국 5만 동력차(노조)가 사흘 동안 계속 투쟁을 할 가치가 있는 거지. 이만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투쟁을 해냈어야말로 세상의 눈은 우리 동력차의 주장에 주목하는 법이다. 우선 우리 진지함을 보는 거다.” “항상 큰 사고가 있으면 반드시 당국이 많이 고압적이 되고 우리 승무원에게 압력을 가해온다. 본보기식으로 처분을 가해 오는 등 무두를 위협하는 거죠. 자칫하면 한숨에 합리화를 밀어붙여 오고. 하지만 이번의 후나바시 사고 경우 완전히 역전해 버렸지. 당국은 목을 움츠리며 역으로 우리가 뽐내고 당당하게 당국을 몰아붙이고.”
조합원들의 이러한 거센 분노, 하늘을 찌를 듯한 자기해방적 참재력이 사민주의자와 동노-가쿠마루파가 외치는 ‘반합리화투쟁’의 한계를 돌파하는 힘이 되었다. 한 명의 노동자를 위해 처분을 각오해서 투쟁할 수 있는 조합이야 바로 진정한 노동조합이다. 청년노동자들의 투쟁이 전체 조합원을 단결시켜 직능적인 낡은 체질과 자본의 이간질을 물리치며 현장노동자 손에 현장장악을 되찾았던 것이다. 도로치바는 후나바시 사고 다음해인 1973년 세키가와 스스무 위원장 ? 나카노 히로시 사무국장 체제로 투쟁적 집행부를 구성했다.
이 후나바시 사고 투쟁은 국철분할민영화에 맞선 뒤 2001년 이후에도 외주화를 계속 저지해 온 도로치바의 근간에 있는 투쟁이다.

청년노동자의 분노를 모아내자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은 이제 그 진가를 발휘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대공황 정세 속에서 공공부문을 비롯하여 모든 현장에 민영화와 외주화, 해고, 대규모 합리화 공세가 닥쳐오고 있다. 이 공세는 청년노동자들에게 가장 심하게 가해진다. 업무 전면 외주화, 비정규직화, 사회보장제도 해체 등 모든 것이 청년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청년노동자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참에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 청년노동자들의 분노를 모아내 투쟁의 선두에 내세우는 것이다. 대공황 하에서 새로운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 노선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별과 일터에서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투쟁이 현장의 모든 노동자를 획득하며 그 노선 아래 단결할 때 투쟁적 노동조합을 되살릴 수 있다.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Chiba-shi Chuo-ku Kaname-cho 2-8, 260-0017 JAPAN
TEL +81-43(222)7207 FAX +81-43(224)7197
홈페이지 http://www.doro-chiba.org/korean/korean.htm
e-mail doro-chiba@doro-chiba.org

mailMAIL
DORO-CH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