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7명 투쟁에 대한 JR총련의 개입, 파괴 책동을 저지하자!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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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名鬪爭に對するJR總聯の介入-破壞策動を許すな!
1047명 투쟁에 대한 JR총련의 개입, 파괴 책동을 저지하자!

<일간 도로치바> 6875~6877호 (2009년 10월21~23일)

JR총련이 1047명 투쟁에 개입하느라 꿈틀거리고 있다. 국철당국과 자민당의 비위를 맞춰 국철민영화에 솔선수범하여 국철노동자 20만여 명 해고의 앞잡이가 된 역사적인 배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1047명 투쟁을 부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보험청 해체-민영화에서는 벌써 천여 명에게 불채용해고가 통지되었다. 도주제(道州制) 도입을 위해 공무원노동자 360만여 명을 일단 해고한 다음에 민영화된 사업장 등에 재고용하겠다는 궁극의 민영화-노조파괴 공세가 기도되고 있다. 이러한 정세가 있기 때문에 1047명 투쟁=국철분할-민영화 문제가 다시 정치의 초점으로 떠올리며 다양한 세력들이 이 원점에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개입과 파괴를 허용치 말자

JR총련의 한 기관인 국제노동총연에서 <시론 동력차노동조합운동의 궤적 -- JR총련 청취연구회 중간보고>라는 책자가 발간되었고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지은이는 도츠카 히데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다.
도츠카씨는 이 책자 중에 있는 좌담에서 JR총련의 최고책임자였던 마쓰자키 아키라에게 “철도공단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그룹이 직접 JR총련에게 ‘좀 협력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면 움직여볼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어보고 마쓰자키는 “JR총련은 JR동노조가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총련에도 그렇게 대응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노조에게는 여러가지 통로로 그러한 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JR총련이 1047명 문제 해결을 위해 협조한다는 것은 100% 있을 수 없다. 그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은 23년 동안 계속 투쟁해 온 1047명 노동자들의 긍지와 투쟁을 산산조각 부수고 1047명 투쟁을 최악의 방식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를 떠안으면서도 1047명 투쟁이 현재까지 계속되어 온 것이 일본 노동운동을 위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이 투쟁에 대해JR총련이 개입해서 파괴하려는 것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배신을 미화!

책자의 내용이야 천박하지만 자민당과 자본의 비위를 맞춰 민영화와 해고의 앞잡이가 된 동노(국철동력차노동조합)본부와 그 후신인 JR총련의 배신을 “대항적인 ‘노동자플랜’의 운동사상이었다.” “새로운 유니언이즘의 모색이었다”며 미화하며 면죄하고 있다.
최대의 특징은 국철분할-민영화의 과정에서 국철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덮쳐들었던가, 민영화 이후 현재까지 JR 노동자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 국철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체 노동운동이 얼마나 후퇴를 강요받고 있는가, 그 결과 일본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는가--라는 핵심적인 문제는 한마디조차 안 나온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일어난 생생한 현실, 동노본부가 앞잡이 노릇을 했어야만 가능케 된 그 수많은 부당노동행위들,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말만을 늘어놓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국철분할-민영화가 강행되기까지 불과 6년 동안에 20만여 명의 국철노동자가 현장을 떠나야 하게 되었던 사실, 7쳔여 명이 불채용=해고당한 사실, 200여 명이 자살로 내몰린 사실, 24만여 명이었던 국노(국철노동조합) 조합원수가 4만여 명까지 줄어들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동노본부가 민영화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야 정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사태은 현실적으로는 그 이상으로 진행한 것이다. JR 혼슈 세 회사(JR동일본, JR도카이, JR서일본)가 다 ‘정원미달’상태가 될 정도로 노동자들이 직장을 떠난 것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몰아친 공격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런 직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떠난 결과였다. 이러한 사태는, 물론 정부-자본의 노동조합 와해 공세가 원인이지만 이 정도까지 노동자를 몰아넣은 최대의 원인이 동노본부의 배신이었다.

“고용을 지킨다”라는 거짓말

특히 비교적 나이가 많은 노동자는 다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JR 출범시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전혀 없다는 이상한 사태가 생겼던 것이다. 애초부터 55세 이상의 노동자는 새 회사에서 채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국철분할-민영화의 기준이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당국과 동노본부에 의해 숙련노동자가 JR에서 계속 일할 수는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동노본부의 젊은 활동가들이 같은 동노의 숙련조합원들에게 “후배들한테 자리를 비워라”며 구박을 하기조차 하였다. “동노가 일자리를 지켰다”라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국노 조합원만이 아닌 자기 조합원들까지 포함하여 직장에서 쫓아낸 것이 사실이다.

“피의 교환”

규탄해야 할 사실들이 숱하게 있지만 이러한 현장의 현실을 만들기 위한 최후의 수법이 당국과 동노본부가 저지른 “피의 교환”이었다. 동노 조합원들을 홋카이도와 규슈에서부터 수도권의 철도관리국에 대량적으로 보내며 국노 활동가의 대부분을 철도현장에서 배제하고 악명높은 <인재활용센터> 등에 내보내고 괴롭히며 연배자들이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 것이다. 마쓰자키 당시 동노위원장이 최대의 목적으로 한 것이 수도권의 운전업무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피의 교환”을 통해 도쿄철도관리국 관내의 국노 운전사가 아예 없어질 정도로 심한 전보가 강행되었다. 자살자가 200명에나 이른 현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긴 것이다.

해고의 앞잡이

마쓰자키는 이 “피의 교환”을 두고 “무덤을 짊어져 왔다”며 미담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노조 조합원들과 자기 노조 조합원들조차 포함한 연배자들의 퇴직과 교환함으로써 “조직을 지킨다”는 수법은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가장 타기할 만한 짓이다.
특히 새 회사에 채용될

“사회주의와 결별”“마쓰자키 동노 위원장이 언명”
“소련,북조선에 환멸”“위법파업 국민에게 사과”
(세계일보 1987년2월24일=국철분할민영화 직전)

지 여부가 밝혀진 시점에서 마쓰자키가 말한 것과 저지른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마쓰자키는 “안타깝게도 동일본회사에는 2만여 명의 공산당과 사회주의협회파 세력이 들어가 버렸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 사실을 보고 화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민간적 수법이라면 그러한 세럭이 들어오면 파업을 하게 될 것이죠. 여태까지도 그랬지요. 당국이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는 거죠……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고 저는 당국과 정치권에게 요청해 왔는데 말이에요 …… 파업을 하지 않게 만든다, 이것은 제 사명감이죠”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승공연합의 신문 <세계일보> 인터뷰에서/1987년2월)

“긴급요청”

게다가 혼슈 JR 3회사에서 그 출범시에 정원이 미달이 되었고 국노와 도로치바 조합원들도 새 회사에서 취업할 수 있게 된 사실이 밝혀진 시점에서 동노본부는 다음과 같은 “긴급요청”까지 했다. “21만5천여 명의 인력규모를 확보하기 위해서 일부에서 국철개혁을 적대시하는 사람까지 새 사업체에서 채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이 사태는 2차 노사공동선언을 어기는 것이고 동시에 새 사업체의 경영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사태이기도 하다. …… 이러한 사태에 대해 개혁협의회로서는 21만5쳔여 명의 일력정원이 마땅한지를 포함하여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을 방안을 요구하며 긴급히 중앙 및 지방에서 국철당국에게 요청하기로 했다.”(개혁노협 사무연락/1987년1월). 법으로 정해진 인력을 더 줄여도 국노와 도로치바 조합원만은 채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지금도 계속 투쟁하고 있는 1047명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해고(채용거부)된 것이다.

“동노 ‘계급투쟁’으로부터 전향”
마쓰자키 위원장 자민당 기관지에서 언명
(산케이신문 1986년4월23일자)

총평 해체의 첨병

이것이 “대항적인 노동자플랜의 사상”이라는 말인가. 국철분할-민영화의 와중에서 마쓰자키가 저지른 것은 미쓰주카 운수장관과 하타노 전 경시총감 등 자민당의 비위를 맞춰 국철당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국노와 도로치바 부수기의 앞잡이가 되며 드디어 승공연합(통일교회)의 비위까지 맞추고 자기의 연명을 도모한 것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갑자기 총평(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을 탈퇴하고 총평과 사회당 해체=우익적 노동전선 통일의 첨병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 노동자들에게 어떤 현실이 덮치게 된지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국철분할-민영화 공세를 시발점으로 해서 풀린 “노동분야 규제완화”때문에 천만여 명 이상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렸고 빈곤이 만연되는 오늘의 현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까지 전락!

<JR총련 청취연구회> 책자는 동노본부가 저지른 “화물안정선언”=파업포기선언과 “일하자 운동”을 미화한다. 마쓰자키는 “투쟁하면 망한다”라는 위기감을 가지면서 애초는 국노 등과 차별화하면 위기를 넘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공격의 강도가 그것을 허용치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말 그대로 민영화와 해고의 앞잡이가 되도록 전락해 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JR에 들어간 후에도 언제 자본 측에 버림받을까봐 자본의 공격을 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상징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은 마쓰자키의 말에서 볼 수 있다.
“지금 아직 낫겠다. (실업율이) 3%이니까 말입니다. 이것이 6%, 7~8%라는 수자가 되면 어떻게 하는가. 정론만으로는 통용 못하게 된다. 이상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군수산업이든 뭐든 해서 먹고살아야 된다. 저는 그렇게 믿는다.”(미토에서 행해진 마쓰자키 강연/1995년 7월). 이러한 사상과 “화물안정화선언” “일하자 운동”은 똑같은 맥락이다. 이를 어떻게 “새로운 노동자플랜의 노동사상”이라고 미화할 수 있겠는가?

“대전환”의 진실

<JR총련 청취연구회> 책자는 대의원대회 의사록 등에 기록된 공식적인 찬양발언을 인용하면서 “화물안정화 선언”과 “일하자 운동”이 “고민끝에 선택”인 것처럼 꾸미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긴 것이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동노본부가“화물안정선언”을 제기한 1978년 쯔야마 대의원대회 행사장에서 일어난 것은 치바지방본부(도로치바의 전신) 대의원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와 린치를 통한 발언 봉쇄였다. 치바지방본부 대의원은 행사장에서 늑골골절 등 중경상을 입었다. 게다가 이 대대에서 갑자기 제기된 것은 그때가지 동노 차원의 결정으로 치바지방본부가 투쟁하던 산리즈카(나리타)공한 비행기연료 화차 수송 저지투쟁에 관련하여 “산리즈카투쟁과 관계를 끊지 않으면 통제처분을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대의원 중 한 40%가 이러한 일련의 방침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후 반대파 지방본부에 가해진 것은 “본부 방침에 따르지 않으면 니들이 담당하는 운전행노를 도쿄와 다카사키철도관리국에 이관하겠다”는 협박이었다. 국철당국과 일체가 되어 이런 식으로 반대의견을 억누른 것이다.

치바지본에 대한 통제처분

사실 우리는 다음해 3월 세키가와 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제명, 모든 집행부의 조합원권 정지라는 도리없는 통제처분을 받았고 “도로치바”로서 분리-독립해서 투쟁할 길을 선택했다.
“도리는 도로치바 쪽에 있지만 안타깝게도 도로치바가 망할 것이다”라는 것이 노동계 대부분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설득’이라는 명분으로 당국의 묵인 아래 모든 현장을 덮쳐든 폭력적 조직파괴와 습격을 물리치며 그 직후부터 시작된 국철분할-민영화와 정면으로 맞서 단결을 지키며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도츠카 씨가 펴낸 책자는 마쓰자키의 “선택”만이 유일한 길이였던 것처럼 꾸미지만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지배계급 측이 국가총체로서 공격을 가해 왔을 때에는 결국 노동조합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노예의 사상이나 다름없다. 계급적노동운동 같은 것은 원래 존재할 수 없다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그리 가치가 없는 것이 돼 버린다.

마쓰자키=가쿠마루 문제

또 이 책자는 국철분할-민영화 공세에 대한 마쓰자키의 굴복을 미화하기 위해 마쓰자키가 가쿠마루파인지 아닌지, 당과 노동조합은 상반된 관계인지 아닌지 라는 주장을 장장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무슨 파냐 아니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를 희생으로 삼아 자기의 보신, 조직의 유지만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당파이든 노동조합이든 절대로 옳지 않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조직을 위해서는 어떤 음모적인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가 얼마나 해고를 당할지라도, 그 결과 노동운동이 얼마나 후퇴할지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은 명백히 가쿠마로 사상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쓰자키가 저지른 것,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것은 가쿠마루노선 그 자체이다.

“국제연대”의 진실

마쓰자키는 노동계에서 전혀 신용이 없다는 현실, 어디까지 가도 “배신자”의 낙인이 따라오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를 위해 이용한 것이 히구치씨와 도츠카씨이며 JR총련의 윤택한 자금을 부어 만든 ICLS(국제노동자교류센터)라는 국제조직이다.
도츠카씨가 펴낸 책자는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고 무료로 퍼트려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공세와 어렵게 투쟁하는 민주노총의 필사적인 투쟁을 오른쪽에서 망치려는 역할을 하고 있다.
JR총련은 말로는 “반세계화”를 내걸지만 도로치바가 7월 샌프란시스코 국제노동자회의에서 만난 필리핀항공지상직노조 위원장은 “JR총련이 막대한 돈을 부어 우리 조직을 분열시켜 민영화를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그쪽에는 필리핀정부가 돈을 내기도 한다. JR총런은 도로보(도둑놈)이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우리가 2003년도 처음 미국에 초청받고 갔을 때에도 “그들이 고급호텔에 머무르고 굼실거리고 있는데 왠놈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들이 1억엔을 넘는 돈을 “원조”해서 폴란드에 건설한 일본미술기술센터와 일본어학교는 수미토모상사나 토요타자동차자본과 함께 자금을 출연 한 시설들이다. 그들이 인도적 사업이라며 중국에 학교를 짓고 있지만 이것들은 동구침출과 중국침출을 기도하는 자본의 앞잡이가 돼어 지어진 것이다. 그들이 말로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180% 다르다.

부패한 노동귀족

마쓰자키는 전형적인 노동귀족에 다름이 없다. 마쓰자키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왜 그 사실을 안 보는가. 하와이에 두 개, 오키나와에 두 개 고급별장을 소유하고 시나가와와 사이타마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생활은 일반 노동자라면 도저히 못 한다. 마쓰자키는 돈투성이의 인물이다. 말로 “양심”을 꾸밀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패한 모습은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참고로 도츠카씨는 이 책자 속에서 마쓰자키와 비교하면서 “닛산의 천황”이라고 일컬어진 시오지 이치로를 높이 평가하며 마쓰자키 역시 좌담 속에서 시오지와의 친밀도를 강조하지만, 시오지는 학졸소장엘리트를 중심으로 닛산자본이 구성한 비공식조직 <기업연구회>에서 자본에 의해 닛산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얹힌 인물이다. “강성노조 닛산분회 타도, 회사의 번영을 위해 몸을 바쳐 실행”이 그 슬로건이었다. 닛산과 프린스자동차가 합병했을 때 전국금속 프린스자동차공업지부 해체를 위해 현장에서 자행된 음참한 집단테러 린치, 그믈코와 같은 밀고조직을 만든 사실은 많은 책에서 드러났다. 시오지는 그 정점에 군림함으로써 닛산 내에 “사장 이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경영방침을 둘러싼 자본내부의 대립 속에서 실권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히 마쓰자키와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모습인 것처럼 치켜세우는 주장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JR자본과의 유착

마쓰자키는 민영화 이후 JR총련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앞에서 지적한 부패는 JR회사와 JR총련의 유착, 한통속이 된 노동자지배 속에서 생긴 것이다.
동노본부에 대해 지배계급이 의도한 것은 민영화와 해고의 앞잡이로 이용해 낸 후 일정한 시기에 버리는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사실 JR서일본, JR도카이, JR시코쿠, JR규슈에서는 그들이 그러한 운명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JR동일본(플러스 JR화물, JR홋카이도)에서는 경영의 일각으로까지 파고들어 농락해 가는 마쓰자키의 교활한 방법으로 극 최근까지 이상한 유착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거기서 생긴 것은 도저히 모두를 말할 수는 없지만 최대의 문제는 민영화 이후 이 20여년 동안 잇따라 제시된 합리화계획들의 모두를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장에 강제해 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자본 측이 “이런 방법도 가능하구나”식으로 전체 노동자에게 강제되는 전형이 된 것이다.

비정규직화의 첨병

예를 들어 JR의 승무원(운전사)근무제도 개악이 그랬다. 승무한 목적지에서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아직까지 사유철도에서조차 도입되지 못한 근무제도가 JR에서는 도입돼 버렸다. 이로 인해 십수시간이나 구속되면서도 근로시간은 “소정시간내”라는 방식이 현장에 강제되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 돌봄노동 등에 도입되었고 다음의 고객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다라는 혹독한 근로조건이 버젓이 자행되게 되었다.
또는 연금지급개시 연령이 단계적으로 연장되며 만65세까지 고용연장이 기업에 의무화된 가운데 자본과 JR동노조(JR총련 산하)가 협조함으로써 가해진 것이 “시니어제도”라는 공격이었다. 그것은 만60세 정년 이후에도 연금만액지급 연령까지 관련회사에서 재고용하는 제도인데 희망자는 관련회사가 실시하는 채용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고용된다는 방식으로, 고용연장시조차 국철분할-민영화 때처럼 “신규채용방식”을 도입해서 노동자를 자유롭게 차별 선별할 수 있게 한 제도였다. 게다가 “업무외주화(=비정규직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맺은 조합에 소속된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악랄한 제도였다. 즉, JR동노조가 업무외주화=비정규직화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JR총련은 이를 “다른 기업의 고용연장제도와 비교해서 뛰어난 제도” “JR동노조 조합원만이 재고용될 수 있다”며 선전해대며 국노 부수기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 제도하에서는 플타임으로 일해도 실수입이 12~13만 엔이라는 너무나 혹독한 근로조건 때문에 재고용을 희망하는 자가 해마다 줄어들어 이 재고용제도는 5년 남짓만에 폐지되었지만 노동조합 자체가 업무외주화를 적극 추진하는 협정을 맺음으로 외주화=비정규직화만은 급속히 진행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역무, 보선, 전력, 신호통신, 토목, 차량검사수선, 구내운전 등 모든 업무에 미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국철분할-민영화에 굴복함으로써 그 포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민영화 이후 20여 년 동안 그 앞잡이가 되어 온 것이 JR총련이다.
JR동일본회사에서는 다른 업체에서는 어떤 어용노조 지배 하에서조차 할 수 없는 합리화 공세가, JR동노조 때문에 잇따라 노동자에게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안전문제에서 굴복

합리화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이 아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의 결과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게 된 사고-안전문제에서 역시 JR동노조는, 사고를 일으킨 자기 조합원을 희생으로 삼아 철저히 회사를 옹호해 왔다. 사고의 책임을 지고 경영진이 사퇴하고 교체하게 되면 자본과 동노조 간의 유착관계가 한꺼번에 바뀔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는 자본 측에서 봐도 최대의 “이용가치”였다. 자본의 친위대가 되어 유해물질 유출을 노사일체로 은폐하는 어용노조와 완전히 똑같은 구조이다.

히가시나카노역 사고를 둘러싸고

예를 들어 1988년 12월5일, 민영화의 다음날에 일어난 소부선 완행선 히가시나카노역 열차추돌사고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운전사와 승객 한 명이 사망했고 많은 승객이 부상한 큰 사고. 운전사는 쓰다누마운전구의 JR동노조 조합원이었다.
원인은 5일전의 운행표 “개정”에 의해 “1분간의 운전시간 단축은 1억 엔의 선전효과가 있다”(JR동회사 치바지사 측이 단체교섭 때 했던 발언)라는 발상 아래 무리한 스피드업-운전시간 단축이 실시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운행표 개정 이전까지만 해도 혼잡시간대에는 매일 치연이 발생하고 있었다. 도저히 무리한 운행표를 운전사에게 강제하기 위해 치비지사는 “수송혼란시에는 적신호를 넘어서 열차를 운행하라”는 엄청난 위법 지시문을 작성하고 운전사들에 배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5일 후 히가시나카노사고는 일어난 것이다. 그날도 열차에 지연이 생겼다. 사태는 바로 지시문대로 운전한 결과 생긴 추돌사고임을 보여주었다.

조합원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에 대해 도로치바는 즉각 안전운전투쟁에 돌입했고 위법인 지시문 등을 규탄하며 사회적으로도 폭로하는 끈질긴 투쟁을 통해 다음해 운행표개정 시 그 이전의 운전시분으로 돌리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 회사측의 친위대로 등장한 것이 JR동노조였다. “(다른 노조는) 운행표 개정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원인은 구명중인 것이고 운행표 개정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닙니다.”(사고 직후에 발행된 <동철로신문>), “(도로치바는) ‘안전운전투쟁’이라면서 ‘운행표 개정 이전의 속도로 돌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으로는 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국노는 ‘운행표 개정’ ‘노무관리’ ‘부당노동해위’ 등등 이유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마치 사고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사고 5일후 올린 <손님의 신뢰를 회복할 결의문>) “동철로(동노조의 옛 이름) 및 JR동일본회사의 대응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 천황폐하 병사에 대해서는 언론 등에서 보도되고 있습니다. 동철로 조합원으로서, 혹은 JR사원으로서 음주 등 떠들썩한 행위 그 자체가 문제시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술자리 등에 참석할 때는 충분히 책임있는 행동을 하도록 지도해 주십시오.”(사고 당일JR동노조 치바지방본부가 낸 지시문서). 자기 조합원의 목숨을 빼앗겨 현장에서는 분노로 가득 찬 상황에서 동노조가 했던 것이 이거였다.

오츠키역 사고를 둘러싸고

지난 23년 동안 사고에 대한 동노조의 대응은 다 마찬가지였다. 더 하나만 예를 든다. 1997년 10월 발생한 오츠키역 사고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사고는 중앙선 오츠키역을 시속 100km로 통과중인 특급열차에 입환차량(기지에서 나온 차량)이 충돌했고 7개 차량이 탈선, “사망자가 안 생긴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보도된 사고였다.
이 입환차양이 운전사는 입환작업을 연습생 시절에 경험한 지 2년 6개월이나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입환작업을 훈련도 없이 그 운전사에게 시킨 사실에 대해 언론조차“JR의 지도체제를 보니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라고 지적했지만 JR동노조는 “본인의 실수다”라고 거듭 기관지 등에서 주장하면서 회사를 옹호했다.
동노조 조합원이었던 당사자 운전사는 기소당했고 재판을 받았지만 동노조는 변호사조차 대지 않으려 했다. 이 사고를 낸 입환차량 운전사는 아무에게도 지원을 받지 못 한 채 해고당한 것이다.

마쓰자키는 무슨 짓을 했는가

그 때 마쓰자키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사고 한 달 후, 사고를 일으킨 운전사가 연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10차 정책포럼에서 강연을 했고 사고와 안전 문제에 대해 <책임추궁보다 원인구명>으로 라는 방향을 명백히 제시한 JR동일본회사 경영진은 대단하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마츠다사장은 위대한 사장이 되었다. 경영철학 혹은 기업문화가 지극히 높은 수준에 있는 것의 소산이다. <책임추궁보다 원인구명으로>라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주제, 카테고리를 명백히 한 JR동일본 노사의 높은 수준을 앞으로도 긍지로 여기고 싶다”며 이상할 정도로 회사찬사를 늘어놓았다.
도츠카씨의 책자는 “노사협조가 아닌 노사협력” “노사는 이퀄이 아닌 니어리이퀄”이라면서 정당화되는 자본과의 유착관계를 호도하기 위해 마쓰자키가 쓰는 기만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러한 사고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니어리이퀄론”의 정체다.

이중의 기준!

JR총련은 JR서일본회사에서 일어난 아마가사키 사고에 대해서는 <일근교육>이 문제다라고 비판하지만 그 직후에 JR동일본회사에서 일어난 우에츠선 사고 (승객 5명 사망)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또 JR동일본회사가 저지른 시나노강 부정취수 문제에 대해서도 회사를 추궁하려는 자세가 추호도 없다. 왜 이렇게 이상한 이중기준이 통용될 수 있는가.
이유야 간단하다. JR서일본에서는 회사가 노무정책을 전환했기 때문에 JR총련에서 하루아침에 조직이 무너져서 극소수파로 전락한 상황에서 동일본에서만은 자본과의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정부 및 JR이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자본과 가쿠마루파가 결탁해서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사실은 막대한 국철이권과 자산의 쟁탈전과 더불어 국철분할-민영화의 가장 더러운 부분이었다.
JR총련이 민영화에 전면협력했음에도 불구하고 JR서일본과 JR도카이 등에서는 민영화의 수년 후에는 결탁체제를 청산하는 쪽으로 노무정책의 전환했고 JR서노조와 JR도카이노조는 “토사구팽”신세가 된 것이다. JR시코쿠노조는 완전이 없어졌다. 소수파가 된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회사가 노무정책을 바꾸자 하루아침의 조직이 사라져 버렸다는 그 사실이다. 이러한 일이 말해주는 것은 JR총련이라는 거대 조직은 회사의 노무정책에 의거해서 성립되고 있을뿐이라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단결 같은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상황은 동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회사에 굴복함으로써 조합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동노조의 20% 가까이는 역장과 구장 등 현장장, 조역, 본사와 지사 등 비현장부문의 관리자층이다. 현장장이 조합원이 되고 현장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이상한 관계 속에서 동노조는 성립되고 있을뿐이다. 그래서 신규채용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100% 동노조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장의 현실은!

당연하게도 현장은 숨이 막힐 상태가 되었다. 노골적인 승진차별과 부당전보, 탈퇴강요 등 부당노동행위가 다반사다인 것만은 아니다. 동료끼리 회사와 동노조의 비판을 할라치면 그 말을 곧바로 회사측이 알게 되었다. 다른 노조 조합원과 개인적으로 사귀어본 조합원이 동노조 기관지에서 이름을 들며 “조직파괴자”라고 비난받았다. 심지어는 퇴직까지 내몰린 조합원도 있었다.
동노조가 “국책수사”라고 주장하는 우라와전차구 사건은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조직파괴자”로 지목된 동노조 조합원은 다른 노조 소속인 동료와 사귀었다는 이유로 동노조에서 와따를 당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는 현장의 회사시설(강습실)을 동노조에 대여하고 그곳에서 연일 그 조합원을 에워싸며 따지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는 그 행태를 모른척하며 허용한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운동사상?

하지만우라와전차구 JR동노조조합원 체포 사태 이후JR동일본에서도 동노조를 “더이상 필요없다”며 버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마쓰자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연명할 것인가 급급하며 자본과의 관계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유착과 대항을 가려 쓰며 애쓰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자각해서인지 아닌지 거기서 등장한 것이 도츠카씨와 히구치씨였던 것이다.
도츠카씨 등은 “새로운 운동사상”이라며 마쓰자키를 치켜세우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기존의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도 있다”라는 사상이다.
하지만 도로치바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왔다. 그것은 뭐 특별한 게 아니다. 아무리 어려울 때에도 “단결의 강화, 확대”를 목적으로 삼아 그 속에 전망을 찾아가는 길이다.
국철분할-민영화 공세의 와중에서 국노 집행부는 전혀 무위무책이었다. 동노본부는 민영화의 앞잡이가 되어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살아남을 길을 택했다. 큰 노조가 굴복하는 상황에서 공격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작은 도로치바가 투쟁의 길을 선택한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합원의 단결과 노동자로서의 긍지를 지킬 것만에 모든 힘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파업을 결의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조합원이 갖는 분노와 저력을 이끌어내면서 투쟁해 왔다.
40명의 부당해고, 백수십명의 부당전보, 수천만엔이 손해배상청구, 수만km 짜리 담당업무의 도쿄 이관 공세(업무자체를 박탈하는 공격. 이거 역시 회사와 동노본부가 결탁해서 강행됨) 등 모든 공격이 가해졌지만 조합원들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40명의 해고자를 지키며 단결을 유지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이 전국,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되고 있다.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통떨어져서 공론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현장의 어려움에 맞서 단결을 지켜내는 것은 반드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야말로 노동운동, 노동자의 투쟁은 대단한 가능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

긍지를 가슴에 안고 전진

도츠카씨가 말하기에 도로치바도 “바보”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뭐래도 노동자가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고작 노동자, 하지만 노동자. 앞으로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현장 조합원과 고생을 같이하며 하나가 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자가 세상을 변혁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고,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믿고 투쟁해 갈 것이다.
우리는 1047명 투쟁에 대한 JR총련의 개입과 파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11월노동자집회에 총력 집결하자!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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