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노동조합
2009.10.23


Korean index page
Japanes home page
Japanes Home page

甦る勞動組合
되살아나는 노동조합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도로치바) 나카노 히로시 전 위원장 지음
<되살아나는 노동조합> 제2장

<제2장 목차>
노동조합이 시대의 최전선에 등장할 때가 도래했다
싸우기 위한 단결형태로서의 노동조합
기업내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임금투쟁방법
노동자가 자본을 대신하는 기개를
쟁의조합으로서의 투쟁
노동조합과 정당
반합리화투쟁의 기본적인 생각
마쯔자키 아키라에게 보내는 말

노동조합이 시대의 최전선에 등장할 때가 도래했다

현재, 일본의 노동자는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져 있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른다. 어디에 전보될지도 모르다. 임금을 비롯해 노동조건도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 아이의 장래나 노후에 대한 불안도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반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노동자는 천만명, 2천만명 규모에 이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원인이 있다. 그것을 알면 반격도 할 수 있다. 아니, 벌써 대부분의 노동자는 직관적으로 그 원인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키워드, 그것은 렌고이다. 그 덩치 큰 노동조합의 총연맹인 렌고의 존재, 이것을 빼고는 노동자의 현실을 말할 수 없다. 렌고 산하의 약 660만명의 노동자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약 6천만명의 노동자 전체의 생활과 권리와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내가 노동자가 된 1960 년 전후는 마침 60년 안보투쟁때였는데, 그 무렵은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항상 우리 눈앞에 있었다. 춘투시기에 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직장과 공장에 붉은 깃발이 솟아 있고 어느 노동조합이나 파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노동조합의 총연맹은 총평이었는데, 우리는 총평의 노동운동을 ‘민동(1)노동운동이다’라고 비판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반동입법 제정에 반대하는 운동이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등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연일처럼 도쿄에서 집회와 데모가 있었다. 아무리 우파적인 노동조합이라도 노동조합에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노동자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무엇인가’라는 학습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국철에 취직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매우 친밀한 존재로, 젊었을 때는 누구나가 ‘앞으로도 노동운동을 계속할까. 아니면, 당국측에 붙어서 역장이 될까’--이러한 선택을 요구되는 청년기를 보냈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은 노동조합이 있다고 해도 경영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입장의 조합뿐이다. 1989년에 총평이 해체되고 렌고가 결성된지 머지 않아 20년이 된다. 그러나, 그 중에 렌고 산하의 노동조합을 보면,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적인 단결형태는 존재한다. 즉, 어떤 노동자라도00조합, △△조합의 조합원이라는 형태로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가면, 실제상은 단결이 파괴되고 있다. 이런 형태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본래 노동자단결의 최고의 형태가 노동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결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게다가, 지금은 렌고와 약 90만명의 전노련 등을 합쳐도 노동조합의 조직율은 20%가 안된다. 압도적인 다수가 미조직 노동자상태이다. 이것도 노동조합의 힘의 저하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겨우 그 정도의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의 전후 60여년의 역사는 역시 노동조합과 자본가와의 관계가 기축을 이루어 왔다. 노동자가 ‘노동조합같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도, 역시 자본가에게 있어서는 노동자가 단결하여 대항해 오는 것이 제일 두려운 법이다.

 사회는 노동조합과 자본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일본의 자본가계급의 총본부는 일본경단련이다. 예전에는 일경련이라는 자본가단체가 있었다. 같은 재계내에서도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이라는 조직은 살롱같은 존재였다. 그에 비해 일경련은 ‘투쟁하는 일경련’이라 불렸다. 1948년에 일경련이 설립되었을 때의 선언문은 ‘경영자여 의연하게 대처하라’라는 말로 맺고 있다. 그 후에도 일관해서 노동운동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라는 경영자측의 지침을 제시한 단체였다. 그 일경련과 경단련이 2002년에 통합하여 일본경단련이 되었다. 그 초대회장은 도요타의 오쿠다이고, 현 회장은 캐논의 미타라이이다.
일찌기 춘투시에는 매년과 같이 신문지상에서 총평의 오오타 카오루 의장이나 이와이 아키라 사무국장과 일경련 대표의 대담이 이루어졌고, ‘금년 춘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논쟁하곤 했다. 그 당시는 노동조합이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싸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64년 춘투에서 공노협(2)이 처음으로 파업을 공공연하게 내걸고 ‘4?17 공동파업’을 제기하였다. 1940년대말의 레드 퍼지나 정원법으로 일본공산당원을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가가 약 10만명이나 해고당한 이후 약 15년간 ‘파업’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64년에 처음으로 ‘파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 춘투때, 파업의 전단계에서 내각총리대신(수상)인 이케다 하야토와 총평의장인 오오타 카오루가 ‘오오타-이케다 회담’을 진행하였다.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당시는 그 정도로 노동조합의 힘이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오타-이케다 회담’에서 정해진 것이 ‘공노협 노동자의 임금은 민간 준거로 한다’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한창 고도 경제성장기였기 때문에 민간 노동자의 임금은 점점 올랐고 공무원의 임금이 낮았다. 내가 취직했을 때도 국철이나 체신, 교육노동자나 시청의 노동자는 임금이 낮았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준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공노협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공노위(공공기업체등노동위원회)가 민간에 준거한 중재안, 즉, 공무원에게는 인사원 권고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는 방식이 1964년에 시작되었다. 즉, 노동조합이 당시의 수상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총평의 조직 인원은 400여만명 규모였는데, 총평은 ‘예전에는 육군, 지금은 총평’이라고들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다가올 시대에 노동자는 렌고의 존재를 어떻게 파악하고 싸워야 하는가. 이 점에서 확고한 생각,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이제야말로 전쟁과 민영화 = 노조파괴공격을 되받아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자. 되살리자, 노동조합을’이라고 호소하고 싶다.
  렌고는 노동자편일까. 터무니 없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렌고란 무엇인가. 진정한 노동조합의 총연맹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본래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노동조합운동의 의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노동조합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싸우기 위한 조직이다. 즉 노동자가 자본과 싸우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란 노동력이 상품화된 사회이며, 그것은 노동자 즉 인간의 상품화라는 점에서 그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격리된 차이가 있다. 자본은 인간인 노동자,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것을 통해서 착취를 행해 이윤을 올린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물건을 생산하는 구조, 사회가 되었다. 인간인 노동자가 상품화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은 상품이 된 노동자를 필요에 따라서 부려먹으며 철저하게 착취한다. 필요없어지면 휙 버린다. 원리적으로도 그러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발생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그것에 대한 투쟁을 역사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혼자서는 항상 내동댕이쳐질 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같은 단결형태를 모색하면서 투쟁해 왔다.
5월 1일의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1일에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가 파업과 데모에 나섰고 피를 흘리며 일어선 투쟁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즉, 본래의 메이데이는 투쟁의 날이다. 지금은 그것이 축제가 되어 버려서 무엇인가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모이지 않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렌고는 지금은 5월 1일이 아니라, 4월 29일에 하게 되었다.
 즉 노동조합이란 자본과 싸우기 위한, 대결하기 위한 조직이다. 싸우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산업별로 조직을 만들거나 혹은 일본의 경우는 기업내적으로도 만들거나 혹은 렌고체로서의 총연맹를 만들거나 각 지방마다 현(懸)평의회를 만들거나 지구노를 만들거나 했다. 노동자가 자본과 싸우기 위해 그러한 여러가지 단결형태, 구조를 만들어 왔다.

 노동자측이 노동조합을 제대로 자리매김하자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자본과 싸우기 위한 무기다라는 것을 우선 무엇보다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투쟁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사회는 좋든 싫든 개별자본의 요망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전체를 지키기 위해서 정부를 만들고 국가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그것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노동조합의 투쟁은 정치투쟁으로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끝까지 가면 반드시 경찰권력이 개입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부르조아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역사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이나 그 외의 단체, 집단 등과 완전히 다른 점은 싸우기 위한 조직이라는 점이다.
일본 헌법에서도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쟁의)권의 노동 삼권을 명기하고 있다. 즉 파업을 행할 권리도 인정하고 있다. 파업이 투쟁의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소위 말하는 부르조아법인 헌법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것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노동조합은 자본측에 몸을 맡기고 자본의 ‘제2 노무 담당부’와 같은 것이 되어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란 자본과 싸우기 위한 조직이며 수단이며 무기라는 관점을 확실히 해둬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측이 노동조합을 제대로 자리매김하자’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아무리 노자협조주의라 해도 노동자인 이상 노동조합을 제대로 노동자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1987년의 국철분할-민영화, 1989년의 렌고 결성 이후, 크게는 일본의 노동운동은 자본-체제의 공격 앞에 패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19년간, 일본의 노동조합은 거의 별다른 투쟁을 하고 있지 않다. 극히 일부인 도로치바나 전일건운수연대노조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 전국금속기계미나토합동 등이 노력하고 있지만, 크게는 투쟁이 없다. 일본노동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전체(全체신노동조합)도 1978~79년의 우편물 체류 투쟁 이래 실로 30년간 뭐하나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일교조나 자치체노조도 대부분의 민간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춘투에서도 파업같은 것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중소 민가철도사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정도이다. 최근에는 2007년말에 전주노(전주류군노동조합.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국내 노동자의 조합)가 임금인하에 반대하여 2파의 파업을 통해 싸웠고, 2008년 1월에는 홋카이도교조가 사정급 도입에 반대하여 24년만의 1시간 파업에 나선 것이 주목을 끈 정도이다. 춘투 시기가 되어도 붉은 깃발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로치바가 파업를 하면 ‘요즘에도 파업을 해?’라고들 한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요즘이니까 더 파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로치바의 파업도 요즘은 매우 큰 주목을 끌게 되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역사의 최전선에 등장할 때이다. 과거에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다. 그것을 지금 하지 않으면 이 2008년부터 매우 힘든 상황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역사의 최전선에 등장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통절하게 느끼고 있는 바이다.

싸우기 위한 단결형태로서의 노동조합

 본래의 노동조합이면 노동자는 비싼 조합비를 내서라도 단결하여 자본과 싸울 것이다. 제대로 이치에 맞는 일을 한다면 노동자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지킬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본측은 그 노동자의 단결을 끊임없이 파괴하려고 한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노동조합의 단결과 아울러 함께 해체하는 공격이 일관되게 계속되어 왔다.
 계급의식이란 ‘나는 결국 회사측-경영측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이다’ ‘저 놈들을 타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라며 투쟁 속에서 좋든 싫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그것을 옹호하는 국가권력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의 단결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계급의식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라는 것에 온갖 정력을 소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부르조아지(자본가계급)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부르조아지의 몰락과 무산계급(노동자계급)의 승리는 모두 불가피하다”라고 했는데 바로 그 말 그대로이다.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은 비화해(非和解)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 비화해적 존재인 노동자계급에게 광범위하게 의거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모순된 관계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노동자의 단결형태를 해체하는 것에 모든 정력을 쏟아 온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 파괴가 자본가의 최대 테마
자본가측은 전후 일관해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를 단결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노동조합간부를 어떻게 농락하여 노자협조의 노동조합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것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입해 왔다. 대기업은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출신의 엘리트가 입사하면, 제일 먼저 인사부의 노무담당에 배치한다. 여기에서 그 나름대로 견뎌낸 사람만이 이사나 사장이 되는 출세 코스로 나갔다. 여기에서 실패한 사람은 그다지 출세하지 못한다. 그럴 정도로 가장 우수한 사람을 인사부에 투입한 것이다.
즉,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지배할 것인가라는 것이 자본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였다. 그 핵심은 노동조합을 노자협조화하여 자본가에게 대항하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서 민간의 대기업은 모두 이것에 대단한 정력을 쏟았다. 그러나 노동자도 가만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예를 들면, 지금은 철강노련은 어용조합의 급선봉과 같은 노동조합이지만, 1950년대에는 수 차례에 걸친 파업을 통해 싸웠다. 교육 노동자는 현재, ‘히노마루-기미가요’ (일본국기와 국가) 불기립투쟁을 싸우고 있지만, 일교조 본부는 전혀 싸우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일교조가 근평투쟁(3)에서는 일본 전체를 뒤흔드는 격렬한 투쟁을 했다. 오지제지(製紙)의 노동조합도 대단한 투쟁을 했다. 국철 니가타투쟁(4)이 있었고 닛산 자동차노조도 격렬한 투쟁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투쟁을 과감하게 싸워냈지만, 그래서 노동조합이 전부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투쟁에 이긴 경우라도 노동조합은 무너져 버렸다. 노동자의 투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자본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오지제지에서는 쟁의 그 자체는 승리했다. 그러나 그 후 오지제지자본은 ‘조합원의 자녀는 오지제지에 채용하지 않겠다’라는 수단에 나섰다. 제지회사는 시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일류기업이다. 그러한 가운데 조합원인 이상 자신의 자녀가 절대 취직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버틸 수 있겠지만, 아이까지 그렇게 취급당한다면……’라고 해서 잇따라 제1조합에서 탈퇴하게 되었고, 제2조합이 결성되었다. 투쟁에는 승리하였지만, 오지제지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제2조합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지금 JR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도로치바 조합원의 자녀는 단 한명도 JR에 취직할 수 없다. ‘자녀를 취직시키고 싶으면 도로치바를 그만둬라. 도로치바를 그만두면, 자녀를 취직시켜 주겠다’라는 식이다.
 이와 같이 자본측은 노동자의 단결을 파괴하고 노동조합을 약체화시키는 것에 엄청난 집념을 태워 왔다.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노동자가 그만큼 노동조합을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자본과 싸우는 노동조합이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렌고는 전후에 있어서의 자본과 노동자와의 격렬한 투쟁, 일종의 당파투쟁에 노동자계급측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는 항상 누가 노동조합의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하는 것을 둘러싸고 자본을 포함한 대당파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렌고 결성은 자본측에 포섭당한 결과이다. 그것을 통해서 자본은 노동조합이 단결하여 자본에 대항해 오는 관계를 끊는 당파투쟁에서 어느 정도 승리했다. 렌고 산하의 조합에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나날이 해체되어 그것은 개별자본내, 사업장내뿐만이 아니고, 지역에 있어도 점점 단결이 해체되게 되었다. 실제로, 지구노나 현평의회가 없어지고 있다.
 따라서 제일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란 자본과 싸우기 위한 조직이며, 무기이다’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처음부터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개별적으로는 싸워낼 수 없기 때문에 산업별로 연대를 추구하고, 단결을 확대해 간다. 그리고 지역 전체로 확대되고, 나라 전체로도 확대되어 간다. 이렇게 하여 총연맹까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본의 정치적 대변자인 정부에 대해서 노동조합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게 하였고 여러가지 요구를 정부에 들이대어 개별자본과 싸움과 동시에 정부와의 투쟁을 하면서 요 몇세기동안 쭉 그러한 투쟁을 해 왔다.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공격은 현장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싸우기 위한 무기인 단결형태를 빼앗기고 잃어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총평해산의 의미는 크다. 총평노동운동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총평은 일단 ‘계급적 노동운동 노선’을 채용하고 있던 총연맹이었다. 그 총평이 해체된 것이 가지는 의미는 단지 총평 산하 400만 노동자만이 아니고, 일본의 모든 노동자의 단결형태가 해체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을 계기로 노동기준법의 실질상의 형해화와 개악, 노동자가 쟁취해 온 모든 권리를 다 박탈하는 공격이 한꺼번에 격화되어 왔다. 노동자는 그 과정에서 ‘과로사’까지 닥쳐왔다. 또한 해고가 자본에 의해서 멋대로 행해지는 ‘해고의 자유판매’와 같은 현상까지 나오게 되었다.
 일본의 전후 헌법은 미국에 의해서 강제되었다는 요소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부르조아법의 범위내에서 노동자의 제권리를 인정해 왔다. 이것은 노동자의 투쟁이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타협안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1945년 직후의 혁명적인 상황에 겁먹은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이 노동자의 투쟁에 대응했다는 요소와 또 하나는 재벌을 해체해 나가기 위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했다는 요소도 있다. 1945년에 패전. 헌법 공포는 1946년. 그리고 머지 않아 1948년에는 ‘정령201호(5)’가 나왔다. 관공노 노동자에게서 파업권을 박탈하는 것이 일찍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헌법발포후 즉시 헌법위반을 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업내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일본의 노동조합의 주요한 형태인 기업별, 혹은 기업내 노동조합이란 어떤 것인가. 기업별 노동조합이 주요한 형태인 것은 선진제국주의국 중에서는 특수하게 일본 뿐이다. 산업별 노동조합은 개별자본의 상황에 관계없이 노동자가 단결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을 시작하기 때문에, 자본측도 거기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개별이 아니라 산업별로 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기업별 노동조합은 현실형태로서는 예를 들면 교통운수산업노동자는 교통운수, 렌고류로 말하자면 교운노협, 옛날로 치면 전교운(전일본교통운수노동조합협의회)과 같은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금속노협(6) 등의 연합체로서 산업별 조직을 만든다. 그러나 기업별 노동조합의 렌고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선 기업에 종속된다. 따라서 기업의 실적이나 기업 자체의 성부에 크게 좌우된다. 거기에 기업의 생산성향상운동,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있다’라는 논리가 매우 통하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이라서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 산업별 노동조합이라도 결국 하나의 직장이 기초가 된다. 노동자의 투쟁과 단결은 항상 직장이 기초이다. 직장이 기초라는 것은 대부분이 한 기업의 직장이기 때문에 여기에 의거하여 투쟁이 일어난다. 따라서 나는 ‘기업내 조직이라서 모든 것이 문제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기업내 노동조합이라서 문제라는 식으로 노동조합조직의 형태에 모든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는 사고는 일종의 기회주의라고 생각한다.
 국철이나 우체국 등,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제일 말단은 직장이다. 직장에 제대로 노동조합의 권력, 한 개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즉 분회나 지부가 있고 집행위원회가 형성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투쟁이 전개된다. 일본의 기업별 노동조합에서는 그러한 말단 직장의 단결형태, 싸우는 조직이 없는 곳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기업별 조합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전망은 생긴다. 그 위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형태가 왜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인가. 노동자는 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인가. 노동조합이 없으면 자본에게 철저하게 혹사당하고, 저임금과 노동강화로 권리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전혀 인간으로서 취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진다. 그것에 대한 분노에서 노동조합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조직은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즉 지도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본에 대해서 요구를 들이대고, 단체교섭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투쟁을 실시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자본에게 강제한다. 그러한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인 것이다.
 노동조합은 일부의 그룹이라든지, 예를 들면 친한 사람들끼리의 모임같은 형태로는 있을 수 없다.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를 결집해 나간다. 본래 그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파 조합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본의 공격 속에서, 분열공작 속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소수파 조합으로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소수파 조합이라도 항상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만일 3분의 1 밖에 없거나 혹은 10% 밖에 없더라도 역시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해 싸우는 것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다.
 자본과 싸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본과 싸운다는 것은 엄청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란 무엇보다도 자본의 공격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 원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이데올로기 집단이 아니다. 이것은 중요한 점이다.
 노동조합이란 자본에 의한 임금 노예화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좋든 싫든 결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조합의 결성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금(전국금속노동조합) 등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을 만들면 자본은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서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전금의 깃발이 있기만 해도 자본은 엄청난 반응을 보이며 이것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것이 점점 1970년대에 들어서자, 그런 것을 별로 하지 않고 전부 포섭해 버리자는 방향으로 변했다. 최근에 점차 그러한 경향을 띠게 되었다.
본심으로는 노동조합을 만들게 하고 싶지 않지만, 일단 만들어졌으면 이번에는 자본의 노동자지배 수단으로 노동조합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부를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조합안에 자꾸자꾸 회사측의 의향을 대변하는 인간을 집어넣는 등 여러가지 수단을 취해 온다. 혹은 노동자 내부에 차별적이고 선별적인 분단을 더해 간다. 그리고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식, 예를 들면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와 같은 생각에 파고들어 여러가지 분단을 시도해 오는 것이다.
 나아가 또 하나는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대는 것이 여러가지 권리가 지금 단계에서도 일단 보장된다는 요소가 있다. 노동조합을 두, 세 명이라도 결성해서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그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경영측-자본측의 위법행위가 되어 버린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헌법 제 28조에서 인정되고 있다. 지금은 노동조합은 지하에 숨어들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존재이다. 공공연하게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할 때까지는 상당히 비공개적으로 진행해야 그 결성을 달성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조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본에 의한 파괴공작에 직면하여 노동조합이 결성 직전에 흩어져 버리는 예는 역사상 수없이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는 정말로 ‘괜찮을’ 때까지는 ‘머리를 들지 않는’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합동노조라도 직장에 의거해야 한다
 단 한명의 노동자가 우선 합동노조로서 모이는 형태가 왜 생겼는가 하면, 그러한 자본이나 권력과의 긴장과 탄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안이함’이 나올 우려도 있다. 역시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직장에 의거해야 하고, 직장안에서 싸울 수 있는 노동조합의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한다. 혹은 그것이 어려운 경우에라도 항상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동노조, 유니온을 만들더라도 그 지구에서 어떤 한곳의 거점적인 직장에 확고한 조직을 만들어 싸운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명씩, 한두명이라도 모이면’이라는 생각만으로는 좀처럼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본다.

임금투쟁의 투쟁방법

 자본에 의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분단과 분열공작은 온갖 수단이 있지만, 제일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공격은 임금이며, 요 몇 백년에 걸쳐서 임금에 의해 분단시켜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임금투쟁이 왜 중요한가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자신을 노동력 상품으로서 자본에게 팔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임금이 높을수록 좋다. 임금은 마르크스가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노임은……노동력이라는 일정한 상품의 가격이다’라고 말한 대로 ‘노동력의 재생산비’이며, 평균하면 그렇게 된다. 그 이상을 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자본제 사회 속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임금은 평균해서 노동력의 재생산비이기 때문에 임금이 높은 노동자도 낮은 노동자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 내부에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임금을 올려 주겠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삭감하겠다’는 구조를 항상 도입한다.
 노동자는 누구나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을 많이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이 최대의 약점이다. 이것 때문에 당한다. 그 때문에 자본측도 자의적 독단적으로 해도 안되기 때문에, 제대로 임금제도-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가장 좋은 예가 직무급-직능급, 혹은 지금은 실적급-성과주의임금, 공무원의 경우는 사정급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의 임금을 주겠다’는 구조, 그렇게 여기게끔 임금제도를 만들어 간다. 이것은 본질적-이론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지만, 매우 현실성을 띠게 된다. 그 연장선상이 결국 ‘회사가 득을 보면 노동자도 좋아진다’는 자본측의 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을 항상 노동자에게 주입하고 있다. 그 기본은 역시 임금이다. 자본에게 있어서 임금체계는 복잡하게 하면 할수록 좋은 셈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잘 모르니까.
 민간 대기업의 임금체계같은 것은 지극히 복잡괴기하다. 최근 백여년간 자본측은 열심히 공부하고, 컴퓨터를 만들어 낼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어서 노동자를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를 생각해 왔다. 일본의 경우에는 그것이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형 임금이라는 형태이며, 거기에 기업별 노동조합이 더해져 그 ‘3종의 신기(神器)’를 전제로 노동조합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이 전제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경제성장이 전제에 없다면 이러한 구조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것을 전부 떨어내 버리겠다며 일본경단련 등은 큰소리치고 있다. 이것은 고도경제성장이 붕괴하고 오늘날의 세계적인 장기불황, 대불황하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형태로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는 군침이 나올 정도로 맛있는 구조마저 해체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내 노동조합이라는 기본방침도 자본측의 고용형태나 임금형태에 대응하여 성립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해체상황에 처하게 되면 앞으로 일본노동운동의 기본방침도 좀 더 다른 양상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일률 대폭적인 임금인상이 필요하다
 임금투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임금과 임금투쟁을 통한 분단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즉, 임금인상요구에서도 그것을 지렛대 삼아 노동자 내부에 분단을 책동해 온다. 예전에는 중노년층과 청년층간의 분단을 가져왔다. 지금은 더 교묘하게 행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투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률 대폭적인 임금인상’이다. 즉 만엔 요구해서 만엔을 획득했다면 전원에게 만엔을 지급하는 형태가 단순명료하고, 가장 올바른 임금투쟁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만엔을 쟁취했지만, 어떤 노동자는 만 5천엔, 어떤 노동자는 5천엔을 받는 식의 방법을 쭉 취해 왔다. 이것은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일률적으로 만엔이라면, 배분도 만엔을 해야 한다. 일률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방식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시 임금에 의해서 분단될 것이다.
연공서열형 임금의 해체란 나이가 들어 근속 연수가 길어지면 급료도 높아지는 방식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렌고 등이 요사이 열심히 주장하고 있는 개별임금방식은 ‘개별임금’이니까 개별적으로 임금을 정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임금이 노동자를 분단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보면 ‘개별임금’같은 것은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임금제도가 자본에 의한 노동자지배의 최대의 축이므로 차별-분단지배의 열쇠도 거기에 있다.
 전후 노동운동의 역할도 그랬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노동자 전체가 먹고살 수 있는 임금을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노동자 전체의 생활과 권리를 높여 노동자에 대한 분단과 차별을 허용하지 않고 단결을 강화해 가는 것을 그 축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가 자본을 대신하는 기개를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본이 주장하는 공격은 ‘애초부터 기업의 발전이 없다면 급료도 올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그 방법 이외에는 노동자의 생활도 향상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세가 좋을 때는 일정한 물질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이 이상 한다면 어차피 기업은 무너질테니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라든가 ‘임금인하다’ ‘몇명 해고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형태로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어떻게 직장운동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
 자본에 영합한 가장 좋은 예는 JR총련이다. 예를 들면 JR동노조 위원장이던 카쿠마루 마쓰자키 아키라는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있다. 따라서 세계 제일의 철도 회사로 만들겠다’ ‘두 번 다시 고용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자꾸자꾸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논리를 가는 곳마다 늘어놓았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임금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어야 비로소 노동이 있다. 자본이 없어진 경우에는 임금노동도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본도 임금노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도 마르크스의 『임금노동과 자본』에 씌어 있다. 즉, ‘노동자가 일하지 않았다면, 너희들 자본가는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를 이런 저임금으로 부려먹어 놓고 결국 먹여살리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그만둬라’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노동자를 먹여살리지 못하는 것은 너희들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니 우리가 대신해서 하겠다’라는 생각을 대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이렇게까지 가혹하고, 먹고 살 수 조차없는 임금노동을 강제하는 자본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자본제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대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생각으로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 만이 아니라, 그래서 노동자는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에는 그 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마땅하다. 또, 없으면 안 된다는 자부심과 확신이 있다. 그것은 노동자가 생산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 자본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도 결국은 노동자가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란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방대한 생산력에 의거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왜 좋은가 하면,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주인공으로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넘쳐 남을 정도의 방대한 생산력이 없는 한 평등이나 공평도 실현되지 않는다. 즉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방대한 생산력에 의거한다. 그 생산을 담당하고, 쥐고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이다. 노동자계급이 유일하게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말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이 있는 것이다. 나는 10여년전에 ‘자본주의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운동’을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이미 제국주의가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달콤한 시대는 아니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대결하고, 전쟁을 중지시키는 노동운동’이 아니면 노동조합운동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시대가 되면 렌고처럼 될 것인지, 도로치바처럼 싸울 것인지의 어느 한쪽 이외에 선택사항은 없다.

쟁의조합으로서의 투쟁

 이어서 쟁의조합에 대해 생각해 보겠는데, 쟁의조합이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상당수의 노동자가 사실상 해고되어 버렸거나 혹은 전금모토야마노조와 같이 공장폐쇄 되는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쟁의란 사실상 임금이 지불되지 않기 때문에, 자본과 싸우면서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지원금 등을 모으며 싸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이 그 나름의 결단을 가지고 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렇게 간단히는 해결되지 않는다. 쟁의조합의 특징은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는 이기는 방법, 어떤 의미에서는 지는 방법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물론 승리를 목표로 한다. 게다가 이겨서 노동조합의 힘이 점점 발전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긴 것까지는 좋은데, 돌아간 직장의 노동조합이 완전히 못쓰게 되어 버린 공산당계의 쟁의는 많이 있다. 역시 이기는 방법, 지는 방법을 잘 생각해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금모토야마투쟁의 위대한 승리
 전금모토야마(전국금속모토랴마제작소노조)투쟁이 2005년에 승리로 해결된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실로 34년간, 만 2천일에 이르는 장기쟁의였는데, 해고도 공장폐쇄도 철회시켰고 체불임금, 연금을 쟁취했다. 그래서 17명의 노동자가 현장으로 돌아갔다. 일본노동운동사상에서도 특필할 만한 위대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전금모토야마가 전금중앙의 통제처분에 저항하여 새 조합을 결성한 것이 1980년이니까, 도로치바를 결성한 후의 일인데 그 당시 나는 ‘당신들은 총평의 조직당담자보다 훨씬 뛰어난 조직자이니 동북지방 일대에서 당신들의 노동운동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모토야마와 같은, 그리고 모토야마 이상의 조합이 많이 생길 것이다’라고. 모토야마투쟁의 질을 체현하며 자본과 싸우는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개별자본과의 공방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좀 더 넓게 노동운동 전체를 어떤 노동운동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개별자본과의 투쟁도 관철하는 그런 관계로 만들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이긴다 해도 30년 이상이나 쏟아넣은 노고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스타일을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금모토야마노조는 제2조합이 다수의 직장에서 새로운 투쟁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트집을 잡는 세력이 있다. 이것은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전금모토야마노조가 도로치바의 형제조합이라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후퇴되어 온 국면에서 겨우 여러 곳에서 투쟁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모토야마투쟁이 승리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전국의 노동자에게 전달하고 격려할 것인가. ‘힘들어도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을 안겨주는 승리이다. 그러한 때에 생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너희들, 노동운동을 취미로 하고 있는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도로치바도 40명이 해고되었다. 그러한 점에서는 쟁의단의 하나이다. 도로치바는 조직 전체적으로는 40명의 해고를 내며 싸운 분할-민영화반대투쟁의 질을 지금의 렌고하에서 어떻게 많은 노동자가 인식하게 만들 것인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도로치바와 대오을 짜서 싸울 것인가라는 데에 승리의 전망과 확신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다. 그러한 자세가 됐을 때 비로소 1047명의 해고철회투쟁 승리를 위한 투쟁도 자리매김될 것이다.

 산별과 지역을 결합하여
 이어서, 지역에서 노동자는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가하는 점이다. 그것은 역시 산업별만으로는 안된다. 물론 렌고를 아래로부터 전복시키는 것은 주로 산별이 중심이 될 것이다. 산별조합의 권력을 탈취해 나가지 않고서는 렌고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곳에만 집착하게 되면 단순한 산별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운동이 잘 결합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총평노동운동이 만들어 낸 지구노(지구노동조합협의회)운동의 좋은 점은 계승해야 한다. 그러나 지구노운동도 도중에 사회당의 선거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는 안된다.
 지역의 노동자가 지구노라는 조직을 통해서 연대하여 어딘가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지역의 노동조합이 다같이 응원하러 가는 관계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없으면 예를 들면 산별에서도 잘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문제와 투쟁은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전산별적으로 일시에 일어나는 문제도 있지만, 대체로 개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때, 지역의 노동자가 그곳에서 하나가 되어 싸우는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라도 지역에서의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산별로 운동을 하는 것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렌고는 기업내 조합을 산별이라고 칭하고 있을 뿐이다. 기업내 조합의 연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의미에서의 ‘산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총평도 산별방침은 취하고 있어도 기업내 조합의 집합체였다. 총평에서 렌고로 바뀌는 과정에서 렌고는 어떠한 노조가 산별조직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렌고 지방조직에 가입할 수 없다는 방침을 취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는 현(縣)평의회이나 지구노는 상급산별조직이 없더라도 무조건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총평의 조직담당자가 현평의회이나 지구노에 배속되어 그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에 힘을 많이 쏟아서 해왔다. 관련된 산별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전국일반노동조합과 같은 것을 만든 것이다. 전국일반노조는 총평이 만든 노동조합이었다.
 그런데, 렌고 지방조직의 경우에는 렌고 중앙에 가맹하고 있지 않은 노동조합은 들어갈 수 없다. 도로치바 등은 ‘저곳은 과격파다’라고 하기 전에 렌고에 가맹되어 있는 상부조직에 가입해 있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들어갈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도 렌고라는 것은 배타적이다. 노동운동은 본래 배타적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본래는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렌고는 한편에서는 ‘조직확대’, ‘인원수가 중요하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노동조합도 적극 가입시키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가입시키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모순된 존재이다. 즉, 그것은 본질적으로 렌고가 노동자의 투쟁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정당

 노동조합 안에는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를 가진 집단이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항상 권력문제가 생긴다. 노동조합의 권력을 어디가 잡는가에 따라서 노동조합은 달라진다. 그 권력을 잡는 것이 개인이든, 파벌이든, 당파이든, 무당파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일정한 이데올로기 집단이다. 지금의 렌고 산하의 대산별은 대부분 회사에 엘리트 사원으로 들어온 자본의 첨병이 각각 노동조합의 권력을 잡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노동조합 안에는 정당을 싫어하는 세력도 있다. 그러나 원래 노동조합운동을 둘러싼 가장 큰 당파투쟁은 자본과의 투쟁이다. 자본과 당국이 일상적으로 흩뿌리는 사상, 이념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둘러싸고 노동자 내부에 다양한 생각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당파투쟁이 되어 싸우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 내부에서의 당파투쟁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해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나는 노동조합을 당파에 종속시키거나 정당을 노동조합 위에 두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그 전형이 일본공산당과 카쿠마루이다. 그들은 ‘노동운동이 무너지더라도 당이 남으면 된다’라는 생각이다. 공산당에 있어서의 노동운동은 선거의 투표수를 늘리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몇 번이나 ‘당이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를 배반해 왔다. 그 상징이 1964년 ‘4?8성명(7)’이다. 전후 혁명기 이후 처음으로 공노협이 ‘통일파업’에 나서려고 하자 마자 “모처럼 당세력을 회복했는데, 지금 여기서 싸우면 또 세력을 빼앗길 것이다”라고 해서 국노(국철노조), 전체(全체신노조), 전전통(전국전기통신노조) 등에서 공산당원이 맹렬하게 파업 파괴를 조직한 것이다.
 카쿠마루도 마찬가지이다. 카쿠마루에 있어서 동노의 운동은 카쿠마루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국철분할-민영화공세가 가해지자 카쿠마루조직의 방위를 위해서 적의 앞잡이가 되어 국노파괴를 펼쳤고 같은 동노의 연배의 조합원조차도 괴롭힌 끝에 퇴직으로 몰아넣었다. 조합을 당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 온 세력은 카쿠마루나 일본공산다, 사회당, 사회주의협회파도 모두 국철분할-민영화와 전혀 싸우지 못했고, 지금은 더욱 굴복하여 파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조합과 당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구별과 연관’론을 내걸면서 ‘구별’만을 강조해 온 카쿠마루인데,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당파에 크든 작든 간에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구별만을 주장하는 생각에는 반대이다. 아니 오히려 ‘노동조합과 당은 한없이 하나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당파의 주장을 노동조합에 가져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정당에 속한 노동자가 자신의 주장을 노동조합내에 솔직히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조합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게 호소하고 있는가하는 것이 아닐까. 그 주장이 올바른지 어떤지를 판단하는 것은 노동자이다. 노동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많이 제기하면 되는 것이고 노동자와 많이 논의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자에게 철저히 의거한 노동자당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반합리화투쟁에 대한 입장

 합리화라는 것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효율화’나 ‘구조조정’이라고 불린다. 본래 자본주의는 그러한 것이다. 항상 좀더 비용이 싼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을 시킬 것인가하는, 자본의 하나의 자기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화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노동강화와 노동밀도의 강화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것에 대한 투쟁이다. 이 영역은 앞서 언급한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있다’라는 공격에 대한 투쟁방법과 기본은 같다.
 ‘생산성 향상운동’이란 ‘생산성 향상운동을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하면 회사도 이득을 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면 노동자의 생활도 좋아진다’라는 논리이다. 이 영역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명제이다. 이 점에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반합리화투쟁에서는 노동자는 합리화를 그다지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과감하게 저항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반합리화투쟁은 자본제 그 자체에 대한 투쟁과 같은 요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노동조합이 개별자본과의 투쟁에서만 그것을 관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자본에게 여지없이 양보하게 할 수는 있다. 그 점에서 일본에서는 총평시절부터 반합리화투쟁은 매우 어중간한 것이었다.
도로치바의 경우는 국철 운전부문의 노동조합이라는 특수성에서 ‘반합리화-운전보안확립투쟁’이라는 하나의 노선을 정립했다. 그래서 합리화반대라는 것과 안전하게 운전한다는 것을 결합시켜서 당국에 맞서는 노선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도로치바의 가장 큰 슬로건이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약 10년 정도는 운행 시간표 개정때마다 노동조건을 조금씩 향상시켜 왔다. 내가 서기장때의 일인데, 운행 시간표 개정때마다 노동조건이 좋아졌다. 현장에 가면 ‘나는 철도에 40년이나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운행 시간표 개정때마다 힘들어졌는데 지금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국과의 힘 관계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할?민영화로 전부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그야말로 20 여년전보다 더 혹독한 노동조건하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도로치바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거기에서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쓰자키 아키라에게 보내는 말

 마쓰자키에 대해 한마디 바판하겠다. 결국은 카쿠마루라는 당파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마쓰자키라는 인격을 통해서 체현되었다. 카쿠마루는 주관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당’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노동자를 ‘먼지’라고 표현한다. 요컨대 멸시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쿠마루는 노동자계급을 지도하는 엘리트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동노 내 카쿠마루에 전형적으로 존재했다. 현장의 노동자를 매우 업신여기고 있다. ‘너희들은 우리가 지도해 주고 있으니 살아 남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할-민영화라는 격동 속에서 결국 스스로의 조직을 온존해 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희생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생겼다. ‘남의 말도 석달’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석달로는 잊어버릴 수 없다. 단순히 한 기업에 있어서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국철분할-민영화는 일본 국가권력의 모든 체중을 실은 공격이었다. 국노를 무너뜨리고 도로치바를 무너뜨려 국철노동운동을 해체하고, 그 후에는 총평을 해산에 몰아넣겠다는 커다란 전략이었다.
 국철의 분할-민영화를 빼놓고는 ‘행정개혁’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동운동에 몸담는 모든 활동가는 물론, 현장의 노동자가 마쓰자키의 본질을 간파해 버렸다. 그리고 마쓰자키도 노동자의 지도부, 동지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실제로는 노동자를 배신하고 억압하는 속임수도 통용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분할-민영화반대’의 깃발을 내렸을 뿐만이 아니라 그 분할-민영화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마쓰자키도 매우 불쌍한 인간이다. 하루도 두 다리 뻗고 잘 수 없을 것이다. 분할?민영화의 과정에서 20만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퇴직하거나 강제전보를 당했다. 200명을 넘는 ‘자살자’도 나왔다. 지금도 해고철회를 위해 천여 명의 노동자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마쓰자키는 죽을 때까지 이 망령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자본의 앞잡이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정부와 자민당, 회사의 간부는 언제 나를 해고할 것인가, 그리고 현장의 노동자는 언제 반란을 일으킬 것인가, 이런 걱정만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자업자득이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지금 그는 자본의 첨병역을 철저히 하는 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다. 아무리 ‘헌법 9조를 확대하는 운동’이라고 하면서 호헌파를 자칭하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결국은 ‘노사공동선언’을 몇번이고 맺고, 그것 안에서밖에 그들의 연명책은 없다는 것이 틀림없는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면서(가쿠마루가 ‘혁명적마르크스주의파’의 약칭), 또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나는 카쿠마루에서 떠났다, 혁명에서 떠났다……’라는 등의 속임수를 반복하고 있다. 카쿠마루의 중앙파에서는 떠났다고 하지만, 카쿠마루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기 내부의 분열같은 것을 넘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노동운동에 몸을 던진 한사람으로서 마쓰자키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쌍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회사측의 명령으로 노동조합에 들어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역할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마쓰자키도 현장에서 단련된 인간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미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러한 계급적 배신을 노동자는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역시 마쓰자키는 엄청난 원한을 떠안고 살고 있다. 나도 여러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움을 받는 방향이 다르다. 나는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지언정 노동자에게는 미움받고 있지 않다.

 마쓰자키 ‘찬미’를 용서하지 않겠다
 마쓰자키는 현재 2007년에 JR총련내에 ‘국제노동총연’이라는 연구조직을 만들어 그 회장을 맡고 있다. 이 마쓰자키를 옹호하는 몇명이 나타났다. 히구치 도쿠조(?口篤三)씨、야마자키 코이치로(山崎耕一?)씨, 도츠카 히데오(?塚秀夫)씨、가와카미 토루(川上徹)씨 등이다. 『정황』이라는 잡지의 2008년 1?2월 합병호에 히구치, 야마자키, 토츠카씨의 논문 등이 게재되어 있다. 여기서 각각 JR총련은 카쿠마루가 아니라는 것을 ‘논증’해 보이거나 국철분할-민영화를 추진한 것을 ‘“대담한 타협”이라는 선택은 있을 수 있다’(히구치씨) 등 마쓰자키-카쿠마루의 역사적인 배반을 찬미하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마쓰자키의 악행을 용서하는 것은 20만명의 해고와 200명의 ‘자살자’를 낸 국철분할?민영화 공세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며, 나카소네총리 이래의 신자유주의공세에 가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세계에서 말할 자격이 없으며,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덧붙여 말해 두고 싶다.

<주해>
(1) 민동: 산별민주화동맹.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내에서 공산당의 이기주의적인 지도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1948년에 산별민주화동맹이 결성되었다. 민동은 1951년에 특히 미일안전보장 문제를 둘러싸고 좌우로 분열, 민동좌파가 총평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2) 공노협: 공노법(공공기업체 등 노동관계법)이 적용되던 3 공사 5 현업의 9 조합(국철노동조합, 국철동력차노동조합, 전국전기통신노동조합, 전전매노동조합[담배.소금전매공사] 전체신노동조합, 전임야[林野]노동조합, 전인쇄, 전조폐, 알코올전매노동조합)으로 조직한 협의체. 춘투의 핵심부대였다.
(3) 근평투쟁: 일교조의 근무평정저지투쟁. 1956년 에히메현에서 시작되어 1959년경까지 전국적인 투쟁이 이루어졌다. 초중학교의 교장이 교육위원회에 근무평정을 제출하는 것을 저지, 이것에 대한 처분에 반대하는 등 파업을 포함한 실력투쟁으로 싸웠다.
(4) 국철니가타투쟁: 1957년의 춘투에 대한 처분에 반대하여, 국노니가타 지본이 일주일에 걸쳐 실질적인 파업을 실시했다. 전국의 국노와 기관차노조(후의 동노)의 청년노동자와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어 신좌익운동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5) 정령201호: 1948년, 공무원의 쟁의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정령. GHQ의 맥아더 사령관이 공무원의 쟁의권, 단체교섭권을 박탈할 것을 지시. 거기에 기초하여 아시다 내각이 제출했다.
(6) 금속노협: 전일본금속산업노동조합. 국제금속노련 일본지부(IMF-JC)로서 1964년에 발족. 우익적노동전선통일을 앞장서 추진. 현재는, 전기연합, 자동차 총련, 기간노련, JAM, 전전선(全電線) 등 5 산별노조로 구성.
(7) 4?8 성명: 1964년 춘투의 정점으로서 합리화반대, 임금인상을 목표로 교통운수공투, 공노협, 금속공투를 중심으로 250만여 명이 4?17 전국 반나절 총파업을 예정. 일본공산당은 직전인 4월 8일 성명을 내어 ‘미국제국주의의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는 수정주의자, 도발자, 분열주의자가 모험적인 총파업을 부추기고 있다’ 라며 당원들에게 파업 중지 지령을 내렸다.

(제2장 끝)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Chiba-shi Chuo-ku Kaname-cho 2-8, 260-0017 JAPAN
TEL +81-43(222)7207 FAX +81-43(224)7197
홈페이지 http://www.doro-chiba.org/korean/korean.htm
e-mail doro-chiba@doro-chiba.org

mailMAIL
DORO-CH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