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7명 해고철회,원고단,투쟁단,쟁의단을 격려하는 7.15전국집회
200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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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동노지바 2005년 7월23일 6131호)
국철노동자 1047명 해고철회, 원고단, 투쟁단, 쟁의단을 격려하는 7.15전국집회

7.15 전국집회가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열려, 전국에서 전투적 노동조합들과 노동자, 시민 등 5800여명이 집결했다

히비야 야외음악당에 5800명 집결

국철노동자 1047명 해고철회, 철거공단소송(*1) 원고단, 투쟁단, 쟁의단을 격려하는 7.15 전국집회가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열려, 전국에서 전투적 노동조합들과 노동자, 시민 등 5800여명이 집결해서, 승리를 잡을 때까지 단결해서 나아갈 걸을 결의했다.

집회는 가나자와 히사시 서부전노협의장의 힘찬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1047명 해고철회를 요구하는 쟁의단과 투쟁단의 투쟁을 지원합니다.
분할민영화, 그리고 청산사업단(*2) 해고 등 2번의 해고는 국철 내의 계급적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민영화 때문에 안전이 붕괴됐고 JR서일본 후쿠치야마선 대참사에 이르렀습니다. 우체 민영화 공세, 자위대 이라크파병 등 우리는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정당과 파벌의 족쇄에서 벗어나 수많은 노조와 시민들이 투쟁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조류의 태동, 이곳에서 우리의 투쟁이 시작합니다. 모두의 힘을 가지고 큰 흐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크게 발전시킵시다.”

민영화는 사람을 죽인다! 저항 없이 안전이 없다! 정의를 관철하는 투쟁! 부당노동행위의 산 증인인 1047명을 직장에 되돌리자. 그것만이 안전한 철도 재생의 길이다!

그리고 동노지바 쟁위단으로 다카이시 동지와 나카무라 동지가 등단해서 며 강력히 결의를 밝혔다

이어 집회 제안인 인사들이 단상에 올라 각각 투쟁사를 밝혔다. “저항 없이 안전이 없다. 분할민영화가 없었더라면 아마르베, 시가라키, 아마가사키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합리화는 사람을 죽인다. 노동자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승리하자.” “어려움을 넘어서 단결의 질과 양을 완성시켜 왔다.” “해고철회 투쟁이 한 걸음 전진했다. 원고단과 쟁의단, 지원 동지들의 공동행동, 1047명과 가족들을 도우며 투쟁하겠다.” “분할민영화는 사람을 죽인다. 사고가 생기기 전에 막아야 했다. JR서일본은 5개항의 안전향상계획을 세워 운전을 재개했지만 분할민영화로 형성된 체질을 고칠 것 없이 결코 안전한 철도를 운운할 수 없다.
안전한 철도로의 전환은 부당노동행위와 노무관리정책을 유지해서는 할 수 없다.
부당노동행위의 산 증인인 1047명을 직장에 되돌리자. 그것만이 안전한 철도 재생의 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2의 아마가사키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이어 특별보고로 언론인인 사이토 다카오 씨가 ‘JR후쿠치야마선 사고와 1047명 해고문제’라는 주제로 발제한 뒤, 영국철도해운노조(RMT)의 토니 도나헤이 위원장이 연대사를 하며 “민영화와 세계화에는 국경이 없다. 국제적인 투쟁이다”며 투쟁의 방향성을 내놓았다. 그리고 9.15 철건공단소송 판결을 앞두고 가토 신스케 변호사가 상황보고를 했다.

이제 철건공단소송 판결까지 앞으로 2달이다. 이번 집회의 큰 집결을 탄력으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쟁취해서 1047명 투쟁을 크게 전진시키기 위해 국노(국철노동조합=고쿠로)투쟁단, 전동노(全국철동력차노동조합=젠도로)쟁의단, 동노지바(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도로지바)쟁위단이 각각 결의를 밝혔다.

안전운전투쟁이 분할민영화체제를 많이 흔든다! 1047명투쟁의 고조만이 JR체제를 몰아붙일 길이다!

마지막으로 집회선언문을 채택한 뒤 도쿄 도심부를 흔드는 거리행진을 벌임으로써 1047명 해고철회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 진형의 더 큰 전망을 열어놓았다

국노 투쟁단 동지들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에 해결을 촉구하는, 후회 없는 투쟁을 벌이고자 한다.”, 전동로 쟁의단 가족은 “지난 12월 대법원이 한 표 차로 ‘JR에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냈다. 하지만 여기서 질 수 없다.”, 국노 철건공단소송단 단장은 “1987년부터 18년 동안 전국의 동지들이 도와주셨다. 국노본부는 많이 변질했다. (9월15일) 만약 부당판결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계속 투쟁할 것이다”며 각각 굳건한 결의를 밝혔다.
그리고 동노지바 쟁위단으로 다카이시 동지와 나카무라 동지가 등단해서 “지난 12월 철건공단소송에 나섰다. 동노지바는 분할민영화를 반대해서 2단계 파업을 하며 국철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었다. 이에 대한 처분으로 국철청산사업단으로 내보낸 뒤 (1990년 4월) 해고했다. 우리는 1047명의 일원으로 투쟁해 왔다(*3).
동노지바는 아마가사키 사고 한달인 5월25일부터 안전운전투쟁에 들어갔다. 지난 40일 동안 회사쪽의 감시 속에서 승무원 동지들이 나날 투쟁하고 있다.
JR동일본에서도 안전이 붕괴돼서 선로파단, 선로마모, 균열 등이 다발되고 있다.
우리의 투쟁으로 선로교환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층 더 JR를 몰아붙여 갈 것이다.
1047명투쟁을 고조시켜 JR동일본을 몰아붙이는 것만이 현장에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강력히 결의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집회선언문을 채택한 뒤 도쿄 도심부를 흔드는 거리행진을 벌임으로써 1047명 해고철회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 진형의 더 큰 전망을 열어놓았다.
아마가사키 사고 대참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투쟁의 원점이 여기에 있다.

*1) 철건공단소송: JR 각 회사가 “JR가 국철과는 다른 법인이라 해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국철을 승계한 철도건설공단에 해고 책임을 물으러 낸 분할민영화 해고철회 소송.

*2) 국철청산사업단: 국철분할민영화 때에는 노동자를 직접 해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온갖 수단으로 자진퇴직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해서 어디까지나 분할민영화를 반대한 전투적 노동자들(국노, 동노지바, 전동노 각 조합원)이 남았기 때문에 이들을 일단 국철청산사업단으로 내보내 일을 빼앗아 퇴직을 유도했다. 그리고 1990년 4월 청산사업단은, 끝까지 버틴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것이 1047명이다.

*3) 동노지바 쟁의단은 1047명 중 9명이다.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Chiba-shi Chuo-ku Kaname-cho 2-8, 260-0017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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