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공항반대집회
200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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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북조선에 자위대를 보내지 마라!
3.28 나리타공항반대집회 열려
동노치바 조합원들도 대거 참석

지난 3월28일 오후 일본 치바현 나리타시에서 현지 농민들이 주관하는 나리타공항(신도쿄국제공항)반대집회가 열렸다. 집회 정식 명칭은 “이라크자위대파병저지 유사법제분쇄 참정활주로연신공격분쇄 군사공항폐항을 위한 3.28전국총궐기집회”이고 주최한 단체가 “산리주카 시바야마 연합 공항반대동맹”이다. 1966년 공항건설계획이 밝혀진 이후 일관해서 농지침탈-나리타공항건설과 이 군사이용을 반대해온 단체다.(자료3 참조)

이날 집회가 현지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신좌익정당 회원들이 모여든 가운데 이뤄졌다.

3.28집회장

집회에서 기타하라 코우지(北原鑛治. 82) 사무국장을 비롯한 반대동맹원들이 참정활주로 북쪽 연신 기도와 이를 위한 농지침탈 시도, 영농방해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또 그동안 자위대가 나리타에서 이라크에 파병되고 있는 실태를 샅샅이 드러내며 “이라크에 자위대를 보내지 마라. 이라크를 침략하지 마라”.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지 마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일미 양정부가 기도하는 북조선 침략전쟁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이라크와 조선 민중들과 연대해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며 결의를 밝혔다.

특히 활주로 터에서 농사를 짓는 시토 토이치(市東東市. 53) 씨는 “농업은 흙이 기본이다. 대체 터와 돈의 위협에는 굴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계속 농사를 하겠다”고 선언해서 참가자들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기타하라 코우지 사무국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동노치바(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은 그동안의 봄투쟁 파업을 보고한 뒤 노-농 연대를 지켜내면서 전쟁을 저지해서 노동자의 미래를 열기 위해 나서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간사이 지방에서 달려온 모리타 코이치(森田恒一. 87) 목사는 조선민중의 항일독립운동 역사를 소개하며 “꾸준히 투쟁하면 인민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고무했다.

집회에서는 미국 반전단체인 A.N.S.W.E.R연합이 보내준 연대 메시지가 낭독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집회 마지막에 “집회선언문”과 “유사관련7법안 반대결의”(자료 2,3 참조)를 채택한 뒤 기동대(전경)가 엄중하게 경비하는 가운데 나리타공항 주위 3.5km를 행진했다.
(다나카 야수히로)

반대동맹 농민들이 공항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맨 왼쪽이 시토 토이치 씨

공항에 이르는 길을 막는 기동대(전경)

(자료1)

집회선언문

4월1일에 예정된 민영화는 나리타공항 폐항에 이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네다공항 국체화와 중부국체공항 개항은 나리타공항의 더 한층의 몰락을 초래함에 틀임없다. 점보제트기가 이착륙할 수 없고 결함투성이인 참정활주로를 떠안은 민영화가 반드시 파산할 것이다.

애초 계획대로 평행활주로를 조성할 수 없게 된 공항공단이 위기감을 품으며 참정활주로 북쪽 연신과 “ㄱ”자 유도로의 직선화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결함투성이 참정활주로를 북쪽으로 더 320m 길게 해서 2500m로 만들었다 해도 점보기를 날릴 수 없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활주로 북단으로부터 400m 범위 보안구역을 동관도(고속도로)가 횡단하고 또다른 위험성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 반대동맹은 참정활주로 북쪽 연신을 저지할 것이다.

공단이 유도로의 직선화를 위해 시토 동맹원의 밭과 텐진미네 현지투쟁본부 터를 매수했고 인도하라고 요구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농지침탈 공격과 현지투쟁본부 철거를 위한 부당 제소를 분쇄할 것이다. 한평공유지를 지켜낼 것이다. 야전병원과 이와야마 단결오두막 철거공격을 분쇄할 것이다. “3년 후 주식상장까지 2500m의 매듭을 지겠다”고 공언하는 공단을 맞서 반대동맹이 결전으로 투쟁할 것이다.

나리타공항이 이라크 점령을 위한 항상적인 출격기지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며 자위대와 점령군의 즉각 철병을 요구한다.

니리타공항의 군사사용은 “이라크점령을 인정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이며 참을 수 없다. 자위대원의 부대이동은 승무원 및 승객과 공항 주변 주민을 전쟁 위협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나리타공항 군사사용을 즉각 중단하라! 나리타에서 이라크에 자위대를 출병시키지 마라!

유사관련7법안으로 나리타공항이 전시체제에 편입될 수 있다. 본 집회는 특별결의를 통해 법안성립 저지를 위한 국민적 대운동을 호소한다.

동노치바 봄투쟁 파업과 연대해서 임금인하와 해고, 합리화와 사회보장제도 개악을 맞서는 노동자들과 함께 나서자.

나리타공항 민영화와 북쪽 연신이 항공정책 파탄의 결과이며 이를 더욱 촉진하는 것이다. 나리타군사공항 페항을 위해 3년간 결전에 총궐기하자.

2004년3월28일

산리주카 시바야마 연합 공항반대동맹


노동자 대열이 유도로 아래를 행진하고 있다

시토 씨 밭을 위협하는 참정활주로

(자료2)

유사관련7법안 반대결의

정부가 이번 국회에 제출한 유사관련7법안 중에 공항과 항만 등을 군사사용할 것을 규정한 “특별공공신설이용법안”이 있습니다. 미국과 자위대가 군사행동을 벌일 때 일본 비행장과 항만 도로 등을 군이 점거 사용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유사”란 조선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나리타공항이 미군의 병참과 출격의 거점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수상이 강제적으로 사용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1950년 조선전쟁과 같은 일이 지금 눈앞에서 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국민보호법”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국가총동원법 역시 나리타공항을 정부가 지정한 특정공공기관으로 만들어 전시체제에 편입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 집회 이름으로 이하 결의합니다.

1. 유사관련7법안 제출을 규탄하며 전국적인 반대운동으로 법안 성립을 저지하자.
1. 투쟁하는 조선 아시아 민중과 연대해서 북조선 침략전쟁을 저지하자.
1. 산리주카군사공항을 인민의 분노로 포위해서 폐항으로 몰아가자.

2004년3월28일

산리주카 시바야마 연합 공항반대동맹


“이라크 북조선 출격 저지”을 내걸고 공항 사이 길을 행진하는 노동자들

“ㄱ”자로 굽으러진 유도로의 바깥 길을 행진하는 여성해방단체 회원들

(자료 3)

산리주카투쟁 약사

1966년7월4일 정부는 수도권 신국제공항 건설계획 "산리주카공항(현재 나리타공항) 설치"를 각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계획은 광대한 공항 터로 지정된 농가들에게 사전에 한마디도 알리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 이때부터 "산리주카투쟁" 37년의 역사가 시작됐다.

시대 배경

당시 미국 베트남침략전쟁이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정부는 본토에 있는 기지와 공항, 항만을 제공해줘서 미군의 병참과 보급을 적극 지원했다. 도쿄 하네다공항에는 미군 전세기가 빈번히 날아와 이 공항이 달마다 5만여 명의 병사와 물자를 전쟁터에 보내기 위한 중계기지가 되었다.
반대동맹이 이런 현실을 보자 반대투쟁 구호에 "군사공항 건설반대"를 담았다.
산리주카투쟁은 농민의 토지와 생활을 지키려는 투쟁이었지만 "군사공항 반대" 구호는 당시 베트남반전운동을 벌이던 학생과 노동자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를 위해 산리주카 농민들과 교류했다.

강제수용

새 공항 건설을 위한 정부 정책은 철저한 "힘의 정책"이었다.
토지수용법이 적용돼 공권력을 대량 투입한 강제수용(1971년)이 자행되었다. 소중하게 갈아온 밭이 무참히 짓밟혔다. 농민들이 일가족 모두가 나서 실력저항으로 일관했다.
반대동맹은 베트남반전투쟁에 앞장서던 전학련(젠가쿠렌)의 학생 및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성채를 쌓아 지하 동굴에 농성하고 게릴라 전술조차 구사하면서 저항했다.
반대파 쪽 구속자가 현재까지 3300여명, 중경상자가 6500여명을 넘었다. 1971년 강제수용을 둘러싼 격돌 과정에서 경찰관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기 참정개항

나리타공항 첫째 활주로가 개항된 것이 겨우 1978년5월이다.
그간 71년 경찰관 사망사건(도호십자로 사건)에 관련해서 농촌 청년 122명이 억울하게 구속됐고 55명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또 78년3월 개항 예정일에는 막 완성된 공항관제탑이 점거 파괴되는 등 개항이 2개월이나 미루어졌다. 이 투쟁 과정에서 학생 2명이 경찰이 쏜 가스탄을 맞아 숨지기도 했다.

수용위 해체

78년 1기 공항 개항 이후 정부는 공권력에 의지한 정책을 유지하면서 반대파 농민들을 매수 분단시키는데 주력했다. 오래 계속된 치열한 투쟁 때문에 적지 않은 농민들이 정치적 화해 자리에 나와 반대투쟁을 떠났다.
83년에는 반대동맹 자체가 분열하기도 했다. 이 분열을 통해 정부와 '협상'을 시도한 그룹이 이후 정부와 화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대동맹이 이후에도 공고히 반대투쟁을 계속했다.
정부는 86년 미매수지를 남긴 채 일방적으로 공항 2기 공사를 시작해서 또다시 강제수용 절차에 나섰다.
이 공방에서는 반대파가 강제수용의 부당성을 널리 호소하며 치바현 수용위원회(각 현마다 설치된 강제수용 결정기관)를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에 모든 위원들이 사퇴하기도 했다(88년10월). 이로 의해 농민을 위협해온 강제수용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가능케 되었다.

참정활주로 개항

2002년4월 나리타공항 둘번째 활주로가 개항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마침내 농민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결국 계획을 극단적으로 단축해서 반대파 농가 바로 앞에 일방적으로 참정적인 활주로를 만들어 개항했다. 농가 바로 위 40m 높이에 제트기를 날림으로써 내몰려는 엄청난 처사였다.
참정활주로(2180m)는 국제공항으로서 이례적으로 짧아, 유도로도 “ㄱ”자 형으로 구부러져 있다. 착륙대(着陸帶)도 나비가 국제기준의 절반 정도다. 1년도 지나지 못해 오버란(overrun) 등 중대사고가 2번이나 생겼다. 반대동맹이 이 무모한 참정활주로를 즉각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군사공항으로

정부는 화해제안에 응한 일부 반대파 그룹에게는 "사죄"하며 두 번 다시 강제적 수단을 취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나머지 반대파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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